<노무현 대통령 6주기 추모글>
♥당신의 노란색은 지쳤습니다..♥
- 정철 - 작가/카피라이터
그래, 오랫동안 노란색이었다. 분홍도 주황도 초록도 입고 싶었지만 당신은 노란색을 지켰다. 지킨다는 건 지친다는 것. 지친다는 건 지겹다는 것. 이제 그만 하자.
개나리에게 너는 내 꽃이야 속삭였던 기억도, 노란 버스만 지나가면 반가워 손 흔들었던 기억도, 노란 달이 뜨면 하늘에 계신 그분 안부를 묻곤 했던 기억도 다 내려놓아라. 이제 분홍 옷 입고 주황 신 신고 초록 가방 매고 산으로 들로 나가라. 강도 좋고 바다도 좋겠지. 노란색이 없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좋겠지.
누가 당신 노란색 아니냐고 물으면 새벽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부인하라. 그게 이 땅에 살아남는 법이다.
남들 다 아는 그 법을, 남들 다 지키는 그 쉬운 법을 당신은 이제야 지키는 거다. 떳떳하게 부인하라.
꽃 같은 아이들이 죽어간 바다에 묵념하는 색깔이 왜 노란색인지 더는 설명하려 하지 마라. 빨강과 파랑으로 굳어져 가는 이 땅의 마지막 희망이 왜 노란색인지 더는 설명하려 하지 마라.
노끈, 노다지, 노동자, 노루, 노름꾼, 노새, 노스탤지어, 노이로제, 노인정, 노적봉, 노총각, 노처녀, 노코멘트, 노예, 노트북, 노틀담, 노파심, 노크, 노천극장, 노랫가락, 노약자, 노랑머리... 이렇게 노로 시작하는 단어는 다시는 입에 올리지도 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온갖 지랄을 떨었는데도 불구하고 누가 당신을 알아볼 수도 있다. 당신 노란색과 친한 사람이잖아, 라는 말과 함께 손가락을 받을 수도 있다. 그땐 당황하지 말고 이렇게 대답하라. 나는 노란색과 친했던 사람이라고. 옛날이야기라고. 친노는 다 죽었다고.
괜찮다. 그래도 괜찮다. 당신은 지쳤으니까. 당신의 노란색도 지쳤으니까. 당신도 당신의 노란색도 할 만큼 했으니까. 대신 가끔, 아주 가끔 지독한 외로움이 당신을 찾아올 수도 있으니 그건 미리 대비하는 게 좋겠지.
당신의 옷장 속 노란 스웨터. 가슴 한복판에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여섯 글자가 정갈하게 놓여 있는 그 옷 한 벌만은 버리지 마라. 서랍 속 깊은 곳에 살려 두어라. 지독한 외로움이 찾아올 때, 지독한 외로움이 지독한 눈물을 밀어낼 때 아무도 몰래 그것을 꺼내어라. 그 노란 옷이 당신의 눈물을 다 받아 주는 손수건이 되어 줄 것이다.
- 노무현 대통령 6주기에 부끄러운 마음으로 바칩니다-